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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너와의 사계절 본문
* 공개 여부에서 공개를 선택하여 비번이 걸려있지 않습니다.
[이루/마피아au] 너와의 사계절
본디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이게 분명 맞을 테지. 그렇게 사랑이라 믿었던 것을 내 손으로 끝내는 게 맞을 테지. 난 원래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없었으니까.
“괜찮아,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너는 어떻게 미소를 지어보일 수 있는 걸까. 그만큼 너는 날 사랑했단 이야기겠지. 그것을 생각하자 가슴이 원치 않게 미어져오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죄어오는 가슴에 입은 쉴 세 없이 미안하단 말을 쥐어짜내고만 있었다.
“미안해할 거 없어.”
그대가 내게 다가와 나의 손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망설임만 있었던 손을 자신에게로 향했다.
“난 그런 점마저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분홍빛 미소가 시선에 닿자 나의 초점이 흔들렸다. 아아, 저 미소를 그리도 사랑했는데...
“...믿어도 되는 거지...?”
“응, 믿어도 좋아.”
겨울처럼 차가운 총구가 그대를 향했다.
“...이치마츠, 그거 알아? 내가 너를 만난 지 딱 1년이 됐어.”
달빛 아래에서 한 패밀리의 돈이 된지 딱, 1년 쯤 된 이야기이다.
내가 돈이 되자고 결심했을 어느 겨울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나를 따라와 준 부하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던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믿을 수 없는 것들은 나를 비웃은 사람들. 능력은 뛰어나지만 마음이 여리단 이유로 패밀리는 바로 무너질 것이라 모두들 비웃어 넘겼었다. 그저 인사치레로 축하한다는 이야기가 코웃음으로 들려왔었다. 그래서 더욱 거칠게 행했지만,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날카로워 보이기만 했나.
“사실 무서워...”
아무도 없는 달빛 아래에서 마음을 고했다. 내가 이끄는 패밀리가 아무 탈 없이 잘 되게 해달라고, 믿지도 않는 신에게 얼마나 셀 수 없이 빌었던지. 그 마음이 어느 여신에게 닿았는지,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듣고 싶었을까.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분홍빛을 몸에 걸친 것 같은, 이 깜깜한 밤에도 밝은 여인이 한 명 서있었다. 처음엔 그것이 내 눈에만 비치던 후광인 줄 알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그녀의 밝은 달빛이었으리라.
“누구신지...”
“달의 수호신이랍니다.”
“수호신...?”
“네, 당신의 기도를 듣고 이곳으로 내려왔답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 보이는 여인이 달의 수호신이라며 자신을 소개하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나 또한 믿지 못했지만, 그 여인의 미소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간절함이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했었을 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수호신님은 나의 수호신도 되어주시는 건가.”
“네, 그러려고 내려왔는걸요.”
“그걸 어떻게 믿지?”
“당신을 보호해드리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치거나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도록 수호신의 가호를 내려드리겠습니다.”
“하... 하하...”
헛웃음이 흘러나오자 여인은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달빛이 어우러진 따스함이 여인의 눈과 마주쳐보였다.
“...수호신님은 이름이 뭐려나.”
“룬워입니다. 그리 불러주세요, 이치마츠 군.”
“이미 내 이름은 알고 있었구나...”
“그대의 수호신이 되려고 왔으니 당연하죠. 잘 부탁드립니다, 이치마츠 군.”
은은한 상냥함이 베인 미소에 거짓이라도 전부 믿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나 간절했었나. 응, 그렇게나 간절하다. 저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짓말이래도 그냥 들은 그대로 전부 믿고 싶을 정도로...
“믿어도 좋습니다.”
완벽히 믿고 싶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믿고 있지 않다는 마음이 들켰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봄바람처럼 나직히 들려오곤 했다. 그 목소리는 매일 들려오지 않고 특정 상황에서만 들려오는데, 그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바로 상대와 대적하고 있을 때마다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어도 되는 거지!”
화답하듯 큰소리로 말하면 그 때부터 나는 정말 불사의 몸이 되어 상대편을 다 쓸어버릴 수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참으로 여러 가지였는데, 여하튼 내게 오는 데미지는 없었으니까.
“저 녀석... 쓰러지는 법을 모른다고!”
총격전이 벌어져서 맞은 녀석은 이미 죽어가는 데 나는 멀쩡한 모습을 보이면 녀석들이 그렇게 말하곤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괜히 기분이 좋아서 히죽 웃어보였다. 그 인상 때문이었을까 이상한 별명이 붙었던데. 뭐랬더라. 백...백...
“백상아리가 떴다...!”
아아, 맞아. 백상아리였네. 별명도 더럽게 못 지어.
어쨌든 바다의 왕자로 불리며-백상아리가 바다의 왕자인지는 잘 모른다-우리 패밀리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날 무시했던 사람들이 이젠 식은땀을 흘리며 날 맞이하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것도 재밌는 걸.
“요새 좋아 보이세요.”
“아아, 수호신님 덕분에 많이 좋아.”
“그것 참 다행이에요.”
그대의 분홍빛 미소가 얼굴에 번지면 나는 감사의 표시로 그대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그대는 분홍빛을 넘어 붉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벼운 인사치례라 생각했던 행동이 그대에겐 심장소리가 들릴 만큼의 행동이었을까.
그런데 어쩌지. 그 모습을 본 나도 심장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거 같은데.
“나를 사랑해줄 수 있나요?”
“여름축제갈래?”
“축제?”
“응, 이 앞에서 한다는데...”
“이치마츠는 가도 되는 거야?”
“응... 시간 괜찮아.”
어울리지도 않게 너에게 손을 뻗어보였다. 그 모습에 너는 또 분홍빛 미소를 보이며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나에게 이런 낯간지러운 감정이 들지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감정이 심장을 간질이고 있었다.
“어떤 축제인데?”
“빛의 축제.”
“아름답겠네~”
“응. 달빛이 제일 아름답거든.”
낯간지러운 말은 멈추지 않았다. 너의 손을 잡고 있는 순간순간마다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오곤 했다. 그 말을 듣는 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 그만큼 좋은 게 없을 정도로. 그것 하나만 바라는 듯이 너를 사랑했다.
“사랑해.”
마치 불도저처럼. 멈추지 않는 사랑을 한 거 같다. 내 감정에 빠져서 사랑을 노래하면 주위를 살필 여유가 사라지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너를 사랑했다.
“나도.”
너의 눈에 내가 담기는 순간조차도 아름다워서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감정에 이렇게 충실한 적이 있었던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지금 하고 싶었다.
쪽-
본능에 따르자 그 끝에 너의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또 다시 붉어진 볼이 눈에 담겼다. 천천히 쓰다듬어 보자 그 열이 내게도 전도되어 조금씩 뜨거워졌다.
펑- 펑-
까만 하늘 위에 아름답게 수를 놓는 커다란 폭죽은 시간을 멈춰주었다. 시간이 멈추어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총소리가 들려오고 근심이 가득한 적의 전장보다, 신비로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가져버린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행복해 보인다, 이치마츠.”
너의 말에 미소를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 보여?”
“응, 그래 보여.”
“그럼 행복한 거겠지.”
무엇 때문에 행복한 기분이 드는 걸까. 아마 하나만 집어 말할 수 없을 거야. 가을이 된 것도 좋고, 천하무적이 된 것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내 시선에 닿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그래? 그거 참 다행이네.”
너의 분홍빛 미소가 또 시선에 닿았다. 나는 저 미소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좋아할 만큼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그렇게 오늘도 행복한 하루가 될 줄 알았다.
“돈...!”
부하가 나를 부르며 내 방으로 뛰어 들어오지만 않았더라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스파이들이... 발각되었습니다...!”
행복할 줄 알았다.
“...내가 당장 갈게.”
그것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돈...”
그리 오래가지 못 할 거 같았다.
발각된 스파이들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서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이 봐왔는데, 이번에 보는 피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처음 맡아보는 피비린내의 역함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스파이를 심은 우두머리가 백의정장의 겁쟁이였나?”
“겁쟁이라니...”
“아아, 요즘은 백상아리라고 불리우지? 유치해 빠져가지고는... 쯧.”
우리 쪽 스파이를 찾은 영감탱이가 혀를 차며 이미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부하들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을 그냥 보고 있자니 피가 거꾸로 치솟는 기분이었다.
“믿어도... 되는 거지?”
‘믿어도 좋아.’
분홍빛이 담긴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믿음이 확신이 될 때만 지을 수 있는 그 미소를.
“얘들아 들어와!”
혼자만 와도 상관없었지만 부상자들을 옮기기 위해,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팀을 나누어 데려왔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저 영감탱이를 당장에 죽이고 돌아가는 것. 지금은 그것이 목ㅍ
탕-
“너만 부하들 데려온 줄 아나보지?”
쓰러졌다. 부상자가 더 늘어나고 말았다.
“젠장...! 쏠 거면 차라리 날 쏘라고!”
“네가 죽지 않는 걸 아는데, 내가 왜 널 쏴서 손해를 봐야하지?”
잔머리 굴리는 게 먹히지 않았다. 이 이상의 부상자는 내가 계획한 일에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최선의 방법은...
“후퇴하자...”
“돈...!”
“지금 그게 최선이야... 부상자가 더 늘어나면 안 돼...”
아무것도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서 도망치기 바빴다. 영감탱이는 우리를 쫓아오는 치졸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분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 부상자가 너무 많은 것이. 그리고 지켜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 미안해... 내가 이렇게 무능해서 미안해...
난 그 말을 쉴 세 없이 되뇌어 중얼거렸다.
“수호신의 가호는 오로지 너에게만 적용되는 걸.”
“나는 내 부하들을 못 지켰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아니! 이건 명백히... 내 잘못이야...”
내 힘도 아닌 능력을 악용한 것이었다. 자만심이 치솟아 앞을 내다보지 못했던 것이지.
실망감은 좌절로, 좌절은 분노로 바뀌었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빛은 보이지 않고 이젠 그대가 원망의 존재로만 비춰진다. 분노를 풀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겠지. 그것만이 지금의 나를 용서할 수 있을 치졸한 변명이었으니까.
“룬워...”
“응?”
“이제 그만 사라져줄 수 있을까...?”
나만 멀쩡하다고 내 부하를, 우리 패밀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닌 거니까. 난 그만 사랑하는 이에게 이별을 고했다.
“너에게 가호를 내렸으니 난 네 곁을 떠날 수가 없어. 네 손으로 직접 죽이지 않는 한은.”
“죽여...?”
“응. 죽인다고 정말 죽는 게 아니야. 나의 육신은 사라지고 영혼은 달로 돌아가니까. 네가 날 죽이기를 원해야해.”
헤어지는 방법도 참 잔인하다. 죽여야 산다는 건 이런 의미였을까. 실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아, 그렇다면.
“나를 위해 죽어줘...”
겨울처럼 차가운 총구가 그대를 향했다.
마치 한순간의 꿈처럼 반짝이며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대를 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등 위로, 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쉴 세 없이 넘쳐흘렀다. 이제 원망할 존재도 사라졌으니 마음이 후련해야하는데, 오히려 슬픔으로 가슴이 죄어왔다.
본디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없었으니까. 이게 분명 맞을 테니까. 그렇게 사랑이라 믿었던 것을 내 손으로 끝내는 게 맞았을 테지. 난 원래 평범한 사랑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냐고...”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해버렸다. 아아, 또 비겁한 변명을 대고 나의 감정을 회피하려고 한다. 내 감정에 충실했던 본능은 창밖에서 녹아내리는 눈들과 함께 저 달나라로 날아가 사라졌다.
봄이 오고 있다. 너는 이곳에 없는데, 다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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